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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제목 |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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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말 3:10-12 | ||
설교자 | 김재수 | 날짜 | 2018-02-18 |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세계 역사상 기독교인으로 최고의 부요를 누리면서 선한 사업으로 일생을 마친 위대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서 그 어려운 가난 속에서 어머니의 유언을 받은 것이 그의 삶을 그렇게 위대하게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록 펠러입니다.
록 펠러는 시카고 100만평의 대지 위에 12개의 종합대학을 세웠는데, 그 하나가 유명한 시카고 대학입니다.
시카고 대학은 5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대학인데 29명정도의 대학교수가 노벨수상자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명문대학입니다. 또 그는 록 펠러 재단을 세워서 전 세계 문화, 사회를 위해서 공헌했습니다.
록 펠러가 86세가 되던 해에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서 시카고 대학내에 기념교회를 세우고 헌당예배를 드렸는데 그날 기자가 조용히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생애를 위대하게 만들어간 비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때 록 펠러는 나는 어렸을때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6살이 되었을때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네가 스스로 교회를 가거라, 내가 지금까지는 너를 데리고 교회에 다녔지만 이제는 네 발로 걸어 가거라, 그러면서 처음으로 20센트의 돈을 나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돈을 네 마음대로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너무 기뻐서 얼른 받아서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머니께서 예야 이 돈은 너에게 주지만 네가 써서는 안될 돈이 이 안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십일조다. 여기서 십일조를 지금 떼라 하시고는 2센트를 따로 봉투에 담으시고 나머지는 네가 쓰되 이 돈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
그러면 너는 땅 위에 사는 동안 축복을 받아서 네가 어린시절에 당했던 그 서러움을 극복하고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어머니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받아 이렇게 부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기자가 당신 어머니가 무슨 유산을 주었습니까.
나의 어머니는 신앙의 유산을 주었는데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바치라고 한 유언이 가장 큰 유산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4,828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전 세계에 모든 선한 일을 하면서 하나도 자기 이름을 거기에 새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으로 한 일이니까 내가 한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그의 생애를 이끌어간 비밀이 바로 어머니의 유언에 있는데 그 첫 번째 유언이 십일조를 꼭 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릴때는 언제나 앞자리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앞자리에 앉든, 중간에 앉든, 뒷자리에 앉든, 그것은 자유지만 목사님의 영적 파장이 앞에는 소낙비처럼 오고 뒤에는 이슬비처럼 내리니까 앞에 앉아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유언은 너는 교회에 가면 절대로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라. 목사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종이니까 그 말씀을 순종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하늘의 지혜를 얻어서 하는 일이 잘되고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어머니의 유언대로 십일조 신앙, 앞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신앙,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이 3가지를 유산으로 받아서 세계 역사상 위대한 그리스도인, 위대한 부자, 선한일 많이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세우시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실 때마다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도 12 제자를 부르시고 팔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도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속이지 말고 율법에 규정된 대로 수입의 십분의 일을 온전히 바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4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까. 묻습니다.
두 번째, 세례를 받았습니까. 세 번째, 주일성수를 잘 하십니까. 네 번째, 십일조 생활을 잘 하십니까.
이것이 신앙생활의 높은 단계의 질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은 믿으면 됩니다. 세례 받으면 됩니다.
주일성수 교회에 나오면 됩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담겨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십일조 신앙을 지켜야 하는데 왜 십일조를 그렇게 강조합니까. 십일조는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첫 것을 드리는 최선의 고백입니다. 수입이 있을때 나중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구별해서 우선적으로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신앙 제일주의 고백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님께 드리는 고백입니다. 첫 열매에 대한 고백입니다.
처음에 교회에 나와서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쉽게 하지만 평생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수입의 십일조를 구별해서 하나님앞에 드리는 것은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뜨거운 신앙의 열정이 불일 듯 일어나야 할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3개월 내고, 6개월 내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체면으로 헌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퇴직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분도 있습니다.
십일조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에요. 하나님 제일주의에요. 감사헌금, 주일헌금, 선교헌금은 다 헌금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헌금이라는 말이 안 붙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만나는 원칙입니다. 이것은 드리는 자의 소유가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액수를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를 드려야겠다고 작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십일조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전도 많이 하는 것도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찬송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바치는 신앙은 최고의 증거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물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면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가 넘칩니다.
내가 드림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오고 안드림으로 사랑이 안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해서 오고 있는데 내가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안오고, 내가 고백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바르게 살려면 3가지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둘째,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셋째, 물질과의 관계입니다.
십계명에 하나님과의 관계 계명이 4개가 있습니다. 나 외에 다른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사람과의 계명은 3개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물질과의 계명은 3개입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하나님은 위로 섬기고, 인간은 옆으로 섬기고, 물질은 지배해야 합니다. 물질이 나를 섬기게 해야 합니다.
물질은 얼마나 무서운 마력을 가지고 있는지 물질앞에 인간이 다 약해집니다.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주님을 찾지만 실제로 물질이 그 중심의 주인이 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록펠러가 돈을 많이 벌어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헌금을 많이 드렸다는 사실은 맞으나, 록펠러가 헌금을 많이 드리기 시작한 시점이 록펠러가 세무 조사를 받은 후라는 사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헌금으로 드리는 돈은 세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록펠러의 헌금은 수상쩍은 부분이 확실히 있습니다. 물론 그가 그 돈을 헌금하는 데에 썼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일이고 그 액수는 상상할 수 없이 많은 돈이지만, 예수님께선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가장 큰 헌금이라고 직접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같이 드러나지 않는 작은 헌금이지만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사례보다 록펠러와 같은 부자들의 사례를 들어 이를 설교시간에 말씀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아 돈을 많이 내는 것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입니까, 세무조사 후부터 진행된 록펠러의 헌금입니까?
그리고 이건 뭔소립니까?
"목사님의 영적 파장이 앞에는 소낙비처럼 오고 뒤에는 이슬비처럼 내리니까 앞에 앉아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의 발성에서 나오는 음파의 파장이 앞에서는 크고 뒤에서는 작다고 하면 전혀 하자될 게 없는 문장이오나, 영적 파장이라는 건 뭐고 그 파장이 앞에는 크고 뒤에는 작다는 건 무슨 소립니까?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믿음이 좋아지고 뒤에 앉은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목사에게 하나님께서 그정도 은혜도 허락해주시지 않습니까? 성경 어디에서도 영적 파장과 관계된 구절이 없습니다. 구약 광야시절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회막은 진 바깥에 따로 있었는데, 영적 파장이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진 한가운데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기록된 2천 명 이외에 약 6천 명쯤이 그 장소에 있었을 거라고 하는데, 예수님과 제일 멀리 떨어진 사람은 은혜를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상태였던 겁니까? 뭐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셋째,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이지 목사가 머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이신 예수님을 이루는 지체로써 각기 다른 직분과 능력으로 교회를 하나되게 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야되는 공동체입니다. 집사는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직분을, 장로는 교회 성도들을 잘 권면하고 치리하는 직분을, 목사는 이 공동체가 말씀 아래 하나님 아래 온전하도록 돕는 직분을 가진 것이지, 집사라고 믿음이 약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고 목사라고 절대적인것도 아닙니다.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자신의 죄와 항상 싸우면서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 말씀 위에 바로서게 해야하는 일을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신중하게 해내야 합니다. 그런 목사는 물론 인격적으로 바르지 못할 수도 있고(하나님께서 잘 키우시겠지만) 잘못하는 일도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목사가 자기의 뜻대로 교회를 움직이기 위하여 성경에는 없는 말로 성도들을 미혹한다면 성도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을 알아도 따라야 합니까? 목사라는 이유로? 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릴 뿐이지 목사가 아닌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십일조가 신앙의 전부입니까? 신앙의 4가지 질문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이 과연 십일조입니까? 예수님을 믿느냐는 질문이 제일 중요한 질문인 것 같은데, 왜 십일조에 관한 질문만 장황하게 늘어놓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믿으면 된다는 말로 아주 단순화되어있는데, 예수 믿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도 아닐 뿐더러 십일조보다 사소한 일은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에 새로 부임하셨다면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하시기 전에 믿음에 대한 것을 확실히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목사님 설교를 보면 구원이야 믿으면 되고 세례야 받으면 되고 주일성수야 나오면 되니까 십일조 열심히 하자는 것처럼 들립니다. 십일조가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들리는데, 정말 하나님이 신앙생활에서 십일조를 제일 중요시하실 만큼 세상 재물에 관심이 많으신 쪼잔한 분이십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과연 나의 고백에 달려 있는 것입니까?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고 하란에서 미적거리거나, 가나안을 벗어나 애굽으로 들어가거나 하는 등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절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이는 비단 아브라함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이후로 그쳤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미리 자기 아들을 죽이고 시작하셨는데, 그런 사랑이 우리가 거절한다고 해서 그칠 것 같습니까?
제 질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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