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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습관
제목 | 좋은 습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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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히10:19-25 | ||
설교자 | 김재수 | 날짜 | 2018-02-11 |
습관은 강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어떤 분은 배고픈 것을 절대로 못 참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분이 있습니다. 원망하고 남을 헐뜯는 분도 있습니다. 모두 잘못된 습관입니다.
우리는 좋은 습관을 찾아야 합니다. 좋은 교인, 좋은 부모,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은 좋은 습관을 들이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심리학적으로 습관은 어떤 마음이 반복되어 생활이 되고 몸에 굳어져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나쁜 습관을 만들어주는 자가 따로 있는데 그것이 마귀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나쁜 습관을 길러줍니다.
그러면 좋은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오셔서 내가 좋은 습관을 갖도록 해주십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주시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모든 생활을 좋은 습관으로 훈련시켜 주실 때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행하던 나쁜 습관들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버려야 하는데도 버리지 못하는 잘못된 습관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성령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좋은 습관을 길러서 나쁜 습관을 약화시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쁜 습관은 제거되고 좋은 습관이 우리 인격 속에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13장에 보면 천국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씨가 길가에 떨어지면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고,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면 곧 싹이 나오기는 하지만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뿌리가 말라버리고, 가시떨기 위에 덜어지면 자라지 못하게 가시가 기운을 막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술을 안 먹을려고 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에요.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함으로 술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안에 충만하면 내 안에 술잔이 자리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서 영혼이 새로워지고 거듭나게 되면 저절로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바람기도 끊고, 춤도 끊고, 화토도 끊게 되더라는 간증을 저는 수없이 들었습니다. 부부간에도 주님을 사랑하고 은혜를 받으면 싸우던 습관이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좋은 습관을 훈련시키십니다. 딤전4:8절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훈련받는 습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땅과 하늘에서 영원히 복받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오늘 저는 습관 가운데 제일 좋은 습관을 한 가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에 나오는 습관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배에 은혜를 받아서 교회 나오는 일에 습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전에 더욱 부지런히 나아갈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습관이 잘못되어 있는 사람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교회에 안 나가고, 속상해도 안 나가고, 마음에 안 맞는 일이 있어도 안 나가는 것은 잘못된 습관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 습관이 들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왜 나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습관이 되면 무엇이 좋습니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옵니다. 출25:22절에 하나님은 속죄소에서 우리를 만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9:43절에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하셨고, 30:6절에는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17:4절에는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막과 성전을 짓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너희와 만나기 위해서 이 집을 지었으니까 너희는 여기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라는 거에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집으로 나올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축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온 세계 민족과 유대인은 다릅니다. 모든 민족이 우상을 찾아갈 때 유대인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출입하였던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시기 위해 우리에게 성전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만나는데 축복이 있습니다. 만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높은 분을 만나면 출세합니다. 사랑하는 분을 만나면 행복합니다. 부유한 사람을 만나면 부유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길이 막히면 모든 것이 막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과 만날 때에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의 제일 큰 축복은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신령하신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어떤 임금님이 전쟁에 나갔다가 위기를 만났습니다. 적군이 죽이려고 할때 옆에 있던 부하가 물리치고 임금님을 살렸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임금님은 왕실의 만찬에 그 부하를 초청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승전을 자축하는 만찬이 벌어지고 만조백관이 모였습니다.
임금님은 이 잔치의 가장 귀한 손님이라면서 자기를 살려준 부하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부하는 예, 저는 군에 입대하기 전에 이발사였습니다. 폐하의 머리를 깍고, 폐하의 수염을 깍는 일을 저에게 맡겨주시면 더 이상의 소원이 없겠습니다, 대답했습니다.
그때 모두가 웃으면서 수군거립니다. 어떤 자리든지 말만 하면 좋은 자리를 줄텐데 하필이면 왜 이발사냐, 정신이 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내 생명을 구해 주었으니까 너는 오늘부터 네 소원대로 내 이발을 전담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임금님의 이발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세월이 1년 2년이 지났습니다. 참모총장은 1년만에 자리에서 쫓겨나고, 국무총리는 6개월만에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이 이발사는 항상 그 자리를 지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임금님이 이발하러오면 눕혀 놓고 코도 만지고 귀도 만지고 지 마음대로 합니다. 지 마음대로 만집니다.
다른 사람은 임금님을 감히 만질수도 없지만 이 사람한테는 다 허용하는 거에요.
그리고 이발을 하면서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 이발사를 너무너무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부터는 임금님의 이발만 끝나면 높은 분들이 이 이발사를 만나러 옵니다.
다음에 이발 할 때는 임금님에게 자기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참모총장이 찾아옵니다. 국무총리가 찾아옵니다. 이발사를 만나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이 이발사는 그냥 이발사가 아니라 임금님의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에 임금님과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우리 사람은 누구를 가까이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전능하신 만군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고 멀리하시면 우리에게 어떤 길이 열리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고 우리의 길을 안내하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가까이하실 때에 우리의 길이 형통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의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성도의 능력과 축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말이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입니다.
만나기 위해서 불러모은 무리라는 뜻입니
저도 예전의 나쁜 습관이 계속해서 남아있는데요. 목사님의 말씀에 "예수 믿어서 영혼이 새로워지고 거듭나게 되면 저절로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바람기도 끊고, 춤도 끊고, 화토도 끊게 되더라는 간증을 저는 수없이 들었습니다. 부부간에도 주님을 사랑하고 은혜를 받으면 싸우던 습관이 사라지게 됩니다."라고 하시니 참 아리쏭합니다. 로마서 5장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말씀을 보면 저는 분명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구속하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도 저절로 이전의 나쁜 습관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는 데에 실패했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윗도 말년에 밧세바를 얻기 위하여 우리아를 죽인 일이 있고, 솔로몬도 말년에 이방 신전을 예루살렘에 세운 바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들도 아니고,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귀히 여김 받았던 사람들인데 이사람들이 저절로 좋은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런 범죄는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인구조사를 하도록 만드십니다. 인구조사는 전쟁을 하기 전에 칼 잡을 사람의 수를 확인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었으므로 이는 범죄입니다. 이 '격동시키다'는 말이 민수기 21장 6절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에나오는 '보내어'라는 말과 히브리어 상으로 비슷한 맥락이고, 이는 '잡고 있던 것을 풀다'가 더 정확한 번역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다윗을 격동시키신 것이 그에게 없던 범죄를 주입시키신게 아니라, 그에게 이미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잡고 계셨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다윗의 죄가 드러난 것이 정확한 해석인 것 같습니다. 다윗도 그 마음속에 예전의 나쁜 습관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았으니 그럼 다윗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한 것이 됩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뒤에 있는 이발사의 비유도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귀히 여겨주시고 가까이 여겨주시지만, 그 분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하는 율법을 완성하셨으므로 대제사장이 아닌 죄인된 우리들도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게 해주신 분인데, 말씀하신 비유에서 사람들이 이발사를 통해서 임금님께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은 천주교에서 우리가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말씀을 전달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과 저희 사이의 중보는 오로지 예수님만 하시는 일이고, 이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길인데, 말씀하신 비유는 저를 오해하게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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